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씸플 창업 초기, 3분 덮밥 100개 쟁여 두고 넉 달간 먹은 이유는?

스타트업 씸플의 창업과 성장 이야기 2


지금이 바로 회사를 뛰쳐나갈 때

우리가 진짜로 창업을 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나타났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내가 그해 6월에 무척 가고 싶어 했지만 갈 수 없었던 회사, 네이버에 몸담고 계신 기획자 A 님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뻥이요 어워드를 참 인상 깊게 보았다. 혹시 함께 제품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강남역 부근 식당에서 저녁 약속을 잡고 A 님을 처음으로 만나 뵙는 자리를 가졌다. 활동적이고 소탈한 첫인상의 A 님은 IT 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노련한 기획자셨다. A 님은 업계의 대선배를 처음 대하는 후배들이 이야기하기 편하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끄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웹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정식으로 개발과 디자인을 의뢰하고 싶다고 하셨다.

국내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일하시는 A 님 같은 분께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는 신입 디자이너에게 먼저 협업 제안을 해 주셨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부풀어 올랐다. 신규섭 대표는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한 지 1년이 넘은 상황이었는데도 그 제안을 받고 무척 설렜다고 했는데, 지금이 바로 회사를 뛰쳐나갈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생애 첫 아이맥을 갖게 되어 매우 신남


씸플 제1막, 동탄 사무실

2012년 1월 1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신도시의 어느 소형 사무실에서 신생 기업 주식회사 씸플(Cimple)이 조용히 막을 올렸다.

우리의 첫 번째 사무실은 근방에 나와 있던 매물 중에서 가장 작고 저렴한 것이었는데도 네 명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었다. 신축 건물에 처음 입주하는 상황이라 사무실 벽과 바닥의 마감이 전혀 안 되어 있었는데 아는 분을 통해 벽지와 장판 시공을 조금 싸게 맡길 수 있었다.

사무실 출입구 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는 유리 벽에 시트지를 붙여야 했다. 그런데 이미 보증금과 월세, 부동산 수수료, 집기 구매비 등으로 큰돈을 쓴 상황이라 전문 업자를 부르기엔 비용이 많이 부담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시트지를 주문해 우리가 직접 시공을 하기로 했는데,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5시간 동안 고군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볼품없이 망해 버렸다. 어떤 분야든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일을 맡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씸플의 첫 번째 사무실 풍경. 사진에서 왼쪽이 신규섭 대표의 책상, 오른쪽이 나의 책상이다.


제품 없이 시작한 씸플, 에이전시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씸플은 창업하기 1년 전부터 개인사업자로 해오던 웹 에이전시 사업을 그대로 이어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첫 번째 의뢰인 A 님과 함께 웹 서비스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는 한 페이지당 평균 예닐곱 장의 시안을 만들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신규섭 대표는 갖가지 최신 기술을 도입해 터치 스크린 UI를 섬세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약 석 달 후 제품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의 태블릿 PC 보급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든지, 사용자 테스트 결과가 예상과는 달랐다든지,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든지 하는 이유로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최종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프로토타입을 목숨 걸고 만든 것처럼 되었으니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A 님이 프로젝트 중단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의 품질이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신규섭 대표와 나 두 사람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라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이 귀중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다. 많이 해 봤던 일을 또 하는 게 아니라 항상 처음 해 보거나 내 능력 밖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내야 했고, 또 실제로 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A 님과 같은 훌륭한 기획자와 한 팀으로 일해 본 것, 그리고 그때의 인연으로 든든한 멘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복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첫 번째 프로젝트를 종료한 후 우리는 몇 개의 홈페이지와 웹 서비스 제작 용역을 맡으며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적자를 면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씸플의 유일한 디자이너로서 나는 외주 영업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기획서를 검토하여 견적을 내고, 의뢰인과 업무 회의를 하고, 계약서를 작성·검토하여 최종 날인하고,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보내고, 수정 사항과 기능 추가 요청의 유효성을 판단하여 수락하거나 거절하고, HTML과 CSS를 이용해 실제로 동작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뿐아니라 XE 마켓에 유료 레이아웃 스킨과 게시판 스킨을 만들어 판매하고, 구매 고객의 질문이나 불만에 응대하고, 제품의 버그를 고치거나 디자인·성능을 개선해 판올림하는 일도 했다.

당시 외주 영업을 위해 만든 웹용 포스터


혼자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점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실전을 통해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남들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게다가 신규섭 대표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나는 불만을 가질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내가 진짜 잘 하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모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돈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랬다. 홈페이지 디자인의 적정 가격은 얼마이며(그런 게 있기는 한가?), 이러저러한 기능 추가에 대한 예상 소요 시간과 비용은 대체 얼마란 말인가(해 보기도 전에 이런 걸 어떻게 정확하게 알지?).

견적서 작성은 사업 4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한 건에 몇 시간씩 잡아먹는 중노동이다. 그런데 당시 경험이 얼마 없던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업 범위와 일정을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조율하지 못해 생기는 견적과 계약에 관한 실수는 모두 우리의 과중한 업무와 영업 손실로 되돌아왔다.


창업 초기에 우리는 회사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닦는 데 힘썼다. 우리는 아직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언젠가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공간, 더 큰돈이 필요할 것이 자명했다.

일단은 우리가 하고 있던 웹 에이전시 사업과 디지털 콘텐츠 판매 사업(XE 마켓 입점)으로 어떻게 더 빠르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객 서비스에 드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장은 우리가 진입할 시장인가 떠날 시장인가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앞으로 ‘모바일 웹’과 ‘반응형 웹’에 대한 수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만일 우리가 남들보다 한발 앞서 반응형 웹 디자인 기술을 프로젝트 실무에 적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씸플을 다른 웹 에이전시로 대체할 수 없게 만드는, 씸플의 강점이자 차별화 점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2011년 겨울부터 혼자 공부해 오던 반응형 웹 CSS 코드 작성법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코딩 공부에 투자했다. 마침 CA에서 주최하는 ‘2012년을 빛낼 웹 기술: HTML5, CSS3, jQuery’ 콘퍼런스 소식을 접하게 되어 재빠르게 참가 접수를 하였고, 업계에서 손꼽는 실무자들의 강연을 직접 들으며 나의 웹 기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부족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2012년을 빛낼 웹 기술: HTML5, CSS3, jQuery 콘퍼런스 티켓


2012년 봄 나는 씸플 홈페이지를 반응형 웹사이트로 개편했고, XE 마켓에 최초로 반응형 웹 레이아웃 스킨을 출시했다. 이후 씸플을 반응형 웹디자인 전문 웹 에이전시로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씸플의 주식은 3분 덮밥?

동탄의 첫 번째 사무실에 근무할 당시 우리는 사무실에 필요한 비품이나 음료를 대형 마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어느 날은 대형 마트의 인터넷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한 개에 2,800원 하는 3분 덮밥을 반값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밖에 나가 사 먹으면 최소 6,000원은 줘야 하는 한 끼 식사를 1,400원에 해결하면, 한 달 식대를 얼마나 절약할 수 있지? 계산은 금방 끝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3분 덮밥을 종류별로 20개씩 총 100개를 주문하고 있었다.

한두 시간 후 전화가 걸려와 받아 보니 홈플러스 온라인 주문 담당 직원이었다.

“죄송하지만, 주문하신 춘천 닭갈비 덮밥은 품절되었고 낚지 덮밥은 2개까지만 구매 가능하세요. 주문을 취소해 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덮밥으로 주문을 변경해 드릴까요?”

“……”

3분 덮밥 100개 인증샷. 이때 이후로 나는 인스턴트 덮밥만 보면 식욕이 떨어진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품절된 두 종류의 덮밥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구매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차라리 몇 개라도 주문 취소를 할 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주문할 때엔 매끼 다른 맛으로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덮밥의 노란 상자만 봐도 입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질려 버리고 말았다.

결국, 덮밥을 다 먹어 치우는 데에 넉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다시는 3분 덮밥을 먹지 않는다. 얼마 전 물어보니 신규섭 대표는 아직도 3분 덮밥이 맛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3분 덮밥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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